✦ 핵심 요약
방문 개요
이번에 내 승진턱 겸해서 후배들 서넛 데리고 가락동 쪽으로 막차를 밟았거든. 1차에서 배는 이미 찼고, 그냥 가볍게 기분이나 낼 생각이었어. 사실 새벽 3시 넘어가는 시간이라 괜히 내상이나 입을까 걱정 좀 했다, 형들도 알잖아, 이 시간대에는 영 아닐 때가 많다는 거. 근데 실장님이 미리 예약해준 '럭셔리 & 골드' 룸 문을 딱 여는 순간, 그 걱정이 싹 날아가는 거 있지? 진짜 황금빛 장식에 대리석 테이블이 번쩍이는 게, "와, 여기 인테리어 폼 미쳤다"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. 어지간한 호텔 라운지 뺨치는 분위기였어. 쾌적한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랑 은은한 아로마 향까지, 이 시간에 이렇게 신경 쓰는 곳 드물지. [!] 예상치 못한 상황
근데 웬걸, 방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홀 복도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야. 설마 했는데, 문틈으로 슬쩍 보니까 내가 몇 번 지명했던 지혜가 다른 테이블 남자들 사이에서 꽃처럼 앉아있는 거 있지. 순간 머리가 띵하더라. 분명 실장님한테 지혜 불러달라고 했는데, 다른 방에 먼저 들어갔다는 게 말이 돼?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나왔지. 오랜만에 기분 좀 내보려던 건데, 이 심통 난 기분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. [후기] 땅콩과의 사투
후배들은 내가 왜 갑자기 말없이 과일안주만 노려보고 있나 싶었을 거야. "형님, 왜 그러세요?" 하고 묻는데,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안주 접시에 있는 땅콩을 집어 들었지. 껍질 채 나온 땅콩 있잖아. 그걸 하나하나 까기 시작했다. 톡, 톡, 껍질 벗겨지는 소리가 내 속에서 부글거리는 심술을 대변하는 것 같았어. 후배 놈들이 시킨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또 땅콩 하나를 까고. 오독, 오독, 씹히는 고소한 맛이 내 씁쓸한 기분을 달래주는 듯 했지. 그 작은 땅콩 껍질을 벗기면서 괜히 "내가 이 업소에 기여한 게 얼만데!" 하는 유치한 생각까지 들더라니까. 나이 먹고 이런 걸로 삐지는 내가 좀 웃기기도 하고. 한참을 땅콩만 까고 있는데, 문이 열리면서 지혜가 들어오더라.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는데, 걔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어. "오빠… 제가 다른 방에 잠깐 들렀다가…” 하면서 조심스럽게 내 옆에 앉는데, 내 앞에는 이미 껍질 산을 이룬 땅콩 무더기가 쌓여있었지. 지혜가 그 땅콩들을 보고 피식 웃는 거야. "오빠, 설마 저 기다리느라 이것만 까셨어요?" 하면서 내 손에 묻은 땅콩 껍질 가루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는데, 그 촉촉한 손길에 귓가에 닿는 숨소리가 어찌나 간지럽던지, 아까의 삐졌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더라. 그 순간, 아까 삐졌던 내 모습이 좀 부끄러워지면서도, 이 친구가 날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구나 싶어서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지. 앵두 같은 입술 산을 보니까 아까 그 심술은 온데간데없었어. "야, 내가 너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" 하고 능청스럽게 말하니까, 지혜가 까르르 웃으면서 내 팔짱을 꽉 끼는 거야. 그날 이후로 지혜는 거의 내 전담 마크가 됐다시피 했지. 새벽 막차를 탔음에도 불구하고, 지혜 덕분에 에너지가 제대로 충전된 밤이었어. 정말 럭키비키하게 풀렸다고나 할까. 한 줄 평: 지명녀의 작은 관심에 삐쳤던 마음이 녹아내린, 럭셔리하고 쾌적한 공간에서의 달콤한 반전.